"안전진단·내진보강 PQ 발주 '숫자놀음' 심각하다"
"안전진단·내진보강 PQ 발주 '숫자놀음' 심각하다"
  • 김준현 기자
  • 승인 2019.05.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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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올리려 수 십 개씩 묶어 발주
부실진단·부실보강… 국민생명 '위협'

업계 “20여개만 PQ 자격 有 전문업체 참여 배제” 문제
일부업체 독점… 불법 하도급 조장 및 부실 유발 가능성↑
교육청 적격심사제도 벤치마킹 필요… 합리적 개선 시급

[국토일보 김준현 기자] 공공건축물 정밀안전진단·내진성능평가 용역 발주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사전심사제(PQ 제도)가 남용되고 있어 ‘행정편의주의’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PQ 제도를 적용할 경우 물리적 소화가 불가능함에도 일부 업체가 독점함에 따라 불법 하도급 및 부실 유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PQ 제도는 사전에 시공경험, 기술능력, 경영상태 신인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시공능력이 있는 적격업체를 선정하고 입찰 참가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로 1억원 이상 발주할 때 적용할 수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지자체·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건축 엔지니어링 용역(정밀안전진단, 내진성능평가) 대부분이 개별 건축물을 통합적으로 묶어 PQ 제도로 발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500여개 안전진단업체 중 20여개 업체만이 PQ 자격을 갖고 있어 나머지 전문업체는 참여가 배제되고 있다”며 “개별 건축물을 20개소가 아닌 3개소씩만 묶어도 5개 업체가 수행할 수 있어 불법 하도급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라장터 공공건축물 정밀안전진단·내진성능평가 용역 발주를 보면 지난 1월 서울시 종로구에서 23개소를 한 번에 묶어 발주한 것이 확인됐다. 영등포구에서는 12개소, 경기도 소방청사에서는 19개소, 경기도 북부 소방청사에서는 15개소를 묶어서 PQ 제도로 정밀안전진단·내진성능평가를 발주했다.

PQ 제도가 문제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용역 기간이 평균 120일에서 150일인 점을 감안하면 시간적으로나 보유인력으로나 이 많은 발주량을 기한 내 수행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120일 내에 평가를 끝내려면 한 프로젝트에 최소 4명의 인력이 필요하다”며 “경기도 소방청사의 경우 19개를 기한 내에 처리하려면 80여명의 기술자가 필요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공건축물 엔지니어링 용역 발주가 공무원들의 행정편의주의식 발주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내진성능 확보 목표를 단축하는 바람에 담당자들이 기간 내에 완료하려고 용역 발주를 쏟아낸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국립대학교 용역 발주 역시 PQ 기준 점수를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종합안전진단 업체들이 시장을 독점해서 문제된 바 있지만, 달라진 게 없어 업계는 공무원의 발주인식 개선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용역관리라는 행정편의 하나 때문에 많은 건물을 하나의 용역으로 묶어 발주한 용역이 낙찰됐다”며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진행하고 있는 담당자들의 행정편의주의와 안전불감증 행태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이와 달리 각 교육청은 학교시설 내진성능평가 용역을 PQ제도로 적용하지 않고 ‘적격심사제도’로만 수행능력을 평가해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발주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또한 내진성능평가나 보강설계 용역은 평가방법이나 수행절차를 정한 매뉴얼이 만들어져 있어 체계적으로 용역이 진행되고 있다.

학교시설 내진성능평가가 보유 기술력 대비 적정한 용역량으로 깊이 있는 평가와 합리적 보강설계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교육청뿐만 아니라 지자체 및 공공기관에서도 발주방식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며 “현재의 발주방식의 비합리성을 밝혀 합리적인 발주 방식이 확립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문제점에 대해 서울시 기술용역 발주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며 “서울시는 최대한 많은 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