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주52시간] “적정 공사비·공기 확보 없이 힘들다”
[건설현장 주52시간] “적정 공사비·공기 확보 없이 힘들다”
  • 김준현 기자
  • 승인 2019.01.2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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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사전 근로일 및 시간 삭제, 7/1 이전 공사 배제해야”

[국토일보 김준현 기자] 혹한기, 장마철 등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건설현장. 그럼에도 주어진 공사기간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주어진다. 작업제한의 한계를 만회하고자 장시간 집중근로를 해야만 공기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적정 공사비마저 주어지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 건설업계가 채감하는 고충은 더욱 커졌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7월 1일, 주52시간 근로시간제 시행으로 건설업계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현장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공기 준수에 대한 압박강도는 더욱 커진 것. 109개 대형 건설현장 가운데 48개 현장(44%)에서 근로시간 단축으로 공기를 준수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건설산업연구원의 실태조사에서 나타났다.  

건설업계는 법 시행 후 근로시간을 단축하려고 노력했다고 항변했다. 더욱이 평균 주 62.6시간을 59.1시간으로 줄인 것이 한계치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적정 공기가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으로 품질 저하 및 산업 재해 등의 부작용마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학교, 청사 등의 국책사업과 아파트 분양 등 민간공사에서 조기 완공을 위해 공기를 단축시켜 발주하거나 사후에 조기 완공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며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할 경우 안전사고 위험이 가중돼 공사목적물의 품질 저하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현 3개월→1년 확대 必 
보통 기업들은 사업계획을 1년 단위로 수립한다. 인력 운용도 1년 단위로 계획하는 실정에서 현행 단위기간은 너무 짧다. 건설현장 특성상 연속작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철도, 도로 등 터널공사는 전체 공정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공정으로 연속작업이 중지되면 장비 임대료와 노무비 증가, 터널안전작업 추가 등 공사 차질과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다.

일례로, 터널공사 발파 현장은 일출~일몰 사이에만 발파가 가능하다. 6시, 18시 두 차례에 발파 작업이 이뤄지는 이유다. '발파→환기→버력처리→1차 숏크리트→락볼트→2차 숏크리트→천공→장약→발판' 순의 공정이 최소 10~12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막장 1개에서 일일 2회 발파를 위해 버력처리부터 장약까지 2개조를 편성해서 진행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GTX 사업이 범국가적으로 추진 중에 있는 가운데 주택밀집지역에서는 발파에 대한 우려로 집단행동 등 격한 반대의사를 내비치고 있다”며 “앞으로 터널 공사에 대한 제약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건설현장은 제조업과 달리 외부적 변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집중근로 부분에서도 문제점이 노출됐다. 

준공일 임박, 마감공사, 학교 방학기간 시공, 왕래가 어려운 해외 현장 등 특정한 상황에서 집중적으로 작업해야 하지만, 유연 근로시간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또한 터널공사도 굴착 구간의 강도에 따라 작업시간이 달라져 근로시간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항만공사는 파도와 조류의 영향을 받아 한달 기준 작업 가능일수가 15일에 불과하다. 아파트공사의 경우에는 수백~수천 가구가 입주 날짜를 기다리고 있어 공기를 준수하지 못할 경우 부동산시장에도 큰 혼란을 끼치게 된다. 집중 근로가 필요한 이유들이다. 

날씨 변수는 설명이 필요 없다. 외부적 요인에 의한 작업 집중기·휴지기가 반복되는 등 건설현장의 작업시간이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세먼지가 연일 ‘나쁨’ 상태를 유지할 경우, 근로자의 건강문제도 염두에 둘 부분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기상·기후의 외부적 요인에 의해 작업 중지되는 일수는 약 146일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수량 10mm이상 32일, 0°C 이하 31일, 미세먼지 저감조치 발령일수 41일, 폭염주의보 33°C 이상 35일, 순간풍속 15m/s 초과 2일, 적설량 10mm 이상 5일이 소모된다.

건설현장은 대부분 공정이 1년 이상 진행되는 만큼 3개월 단위기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현실적으로 활용이 어렵다. 해외현장, 국책사업, 공기임박 등의 경우 최소 6개월 이상의 집중 시공이 필요하다.

실제로 건설 근로자를 주로 고용하고 단위 공정을 수행하는 종합건설업의 91.2%는 계약기간이 6개월 이상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만으로는 최대 64시간 근로가 가능한 기간이 10주에 불과하고, 남은 3주가량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다.

건설업계는 사전 상황 예측이 어려운 건설현장의 특성을 반영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전 근로일 · 시간 확정 규정 삭제해야 
건설업계는 사전 근로일 및 시간 확정 규정은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작업일과 작업시간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건설현장의 경우, 대부분 수많은 사업 주체와 협업 체계로 진행된다. 다른 업체의 사정 때문에 작업날짜와 시간 변경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지할 수 없는 연속작업이 많아 실제작업 종료시점을 확정할 수 없고, 근로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돌발변수도 많다. 콘크리트 타설이나 터널 등 연속 작업 공종의 경우 작업 종료 시점 예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건설업계는 현장 총괄·품질 안전 등 관리업무의 경우 시공관리 외의 현장 상황에 따른 추가 근로를 할 수밖에 없으므로 사전 근로일과 시간을 결정할 수 없어 '삭제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동의 요건도 완화될 필요가 있다.

2017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률은 3.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주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취업규칙 반영 및 근로자 동의를 받아 활용할 수 있으나, 이마저도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경우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3개월 단위의 경우 단체협약이 요건이기에 노사간 합의가 필요해 신속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이 곤란하다. 요건 완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개별 근로자가 원하는 상황에서도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이 무력화될 우려가 크다.

■ 7·1 근로시간 단축 정책 이전 추진 공사 배제 필요 
근로시간 단축 시행 이전인 지난해 7월 1일 이전에 시작된 공사는 68시간 기준으로 공정 계획이 마련됐다. 건설업체의 귀책이 아닌 관련 법령 개정으로 인한 공기 미준수, 추가 공사비 부담 등 심각한 피해가 건설업계로 전가된 상황이다.

건산연에 따르면, 피해금액은 총 공사비의 평균 4.3%, 최대 14.5%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법 개정으로 인한 피해를 일방적으로 감수하라는 것은 신뢰보호라는 법적안정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사업체의 규모가 다른 여러 건설업체가 공동도급 및 하도급 계약을 통해 동일한 공사현장에 참여한다. 사업체의 규모에 따라 근로자간 작업시간이 상이해 원도급자 통제를 벗어난 공사 진행, 시공 효율성 저하, 안전사고 우려 등 혼란이 발생한다”고 성토했다.

건설협회 역시 건설업계가 최근 공기지연을 피하기 위해 추가 인력을 투입하려고 해도 인력수급난을 겪고 있고, 기존 근로자마저 근로시간 단축 적용 현장으로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종전 근로시간에 따른 공정계획이 수립된 공사에서 추가 공사비·공기에 대한 보전이 없다면 업체는 손해를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무리한 시공은 필연적으로 안전사고 증가, 품질저하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다.

문제는 ‘계약변경 지침’이 시달됐지만, 발주기관은 이미 주 52시간 내로 공기가 설정돼 계약변경 필요성을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민간공사는 민간발주자가 추가 공기·공사비를 인정해 줄 이유가 없어 건설업계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밖에 없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7·1 시행 이후 입찰공고 공사부터 근로시간을 적용해야 한다"며 "근로시간 단축으로 법 위반 사례가 속출되고, 연속작업이 불가피한 현장의 이해와 최근 미세먼지 등 예측 어려운 현장을 도외시해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이어 “현장 적용이 가능한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