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공공발주제도에 대한 유감
[특별기고] 공공발주제도에 대한 유감
  • 국토일보
  • 승인 2011.03.1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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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오 경 한미파슨스 전무


건설산업의 혁신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5년 주기로 작성, 공포하는 건설산업진흥계획과 건설기술진흥계획 외에도 각종 종합대책, 선진화 전략과 계획이 발표 됐다.

2009년에는 민간위원회가 주도한 ‘건설산업 선진화 비전 2020’이 발표돼 건설혁신의 기대를 높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든 대책과 계획의 중심에는 항상 발주제도가 있다. 발주제도는 설계, 엔지니어링CM 및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틀을 정하는 작업이다. 그 틀에 따라 부문간, 업체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공공시장의 경우 가장 민감한 사안이 바로 발주제도이다.

반면에 민간부문의 발주제도나 업체선정방식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는 사전에 정해 놓은 틀이 없기 때문이다.

민간발주자는 自社와 프로젝트의 특성을 반영해 건설 프로젝트의 관리목표인 원가절감, 공기단축, 품질확보 등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경쟁력 있는 업체를 선정하는 자신의 틀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틀은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에 방법도 명확하고, 간단하다. 그러기에 이견도 불만도 적은 것이다.

공공발주제도는 무수한 변천을 거듭하고 있다. 모든 발주제도의 근간이 되고 있는 최저가낙찰제도의 경우 1951년 처음 적용되기 시작해 폐지와 도입, 확대와 축소를 지속하고 있으며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설계.시공일괄입찰의 경우도 개정에 개정을 거듭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변화는 조달에 대한 기본원칙과 목표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미국 연방조달규정의 조달정책의 목표는 ‘수요자에게 가장 가치 있는 물품이나 용역(best value product or service)을 제때 조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다는 이유로 뚜렷한 원칙과 목표 없이 투명성과 객관성만을 강조한다. 이로 인해 요행에 의한 낙찰이나 가격 중심 낙찰제도가 주로 적용되고 있으며, 시장의 변화와 외부의 압력에 의해 개정에 개정이 거듭되고 있어 기술발전과 경쟁력 향상을 저해하고 있다.

이러한 폐해가 가장 심각한 분야가 설계․엔지니어링, CM, 감리를 포함하는 건설의 소프트 분야이다.

건설 소프트 분야는 투자되는 비용은 전체 건설투자 대비 미미하지만 건설사업비의 절감과 공기단축 및 품질․안전 향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건설의 소프트 분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법‧제도의 후진성으로 인하여, 외국에서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저부가가치 산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설 소프트 분야의 법과 제도에서 가장 후진적인 부문이 발주제도이다.

특히 건설사업관리(CM)를 포함한 용역업체의 선정방식은 세계에 없는 특이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시공은 건설 목적물을 인도하게 돼 건설 후는 물론 건설 중에도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다. 설계, 엔지니어링의 경우 도면과 설계도서를 납품받아 결과의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CM의 경우 용역중이나 용역 후에도 확인이 어렵다. 이로 인해 발주자의 만족여부가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게 돼 능력 있는 업체의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 등 선진 외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가격경쟁보다는 ‘가치, 품질’을 기반으로 기술경쟁에 의한 용역업체 선정방식이 활성화되고 있다.

즉, 가격이 아닌 기술경쟁력을 평가해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것이다. World Bank, IBRD, FIDIC, ADB 등의 국제기구들은 QBS(Qualification Based Selection) 방식 또는 QCBS(Qualification & Cost Based Selection) 방식을 적용해 경쟁력 있는 용역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1972년 제정된‘Brooks Act’에 의해 당해 용역의 수행자격과 경쟁력을 보유한 업체와 협상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투명하게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격기술서와 실적을 기반으로 3개 이상의 업체를 선정해 기술력을 평가하고, 기술능력평가에서 1위를 한 업체와 정부가 판단하기에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협상을 통해 계약하고 있다.

우리와 유사한 법과 제도를 적용하고 있는 일본 조차도 2005년‘品質法’을 마련해 일정 규모 이상의 용역에 대해서는 용역업체 선정 시 기술제안서 방식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부용역을 발주하고 있는 조달청의 용역업체 선정방식은‘용역적격심사 및 협상에 의한 낙찰자 결정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본 기준은 사전자격심사(PQ)의 변별력 부족, 실적 및 가격위주의 경쟁 등에 따른 문제들이 심화되고 있으며, 국제적인 기준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첫째, 낙찰자 선정의 기준이 되는 종합평점의 계산방식이다. 본 기준에 의하면 정부가 제시한 예정가격 이하로서 최저가로 입찰한 자 순으로 심사해 종합평점이 일정점수 이상인 자를 낙찰자로 결정한다.

문제는 PQ+기술평가점수+가격평가점수의 합인 종합평점의 기준이 추정가격에 따라 낮아진다는 것이다. 즉, CM의 경우 추정가격 10억 미만의 프로젝트는 95점이지만 30억원 이상의 경우는 85점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프로젝트의 종류와 특성, 난이도, 지역에 관계없이 추정가격이 커지만 용역비는 낮아지는 구조로 돼 있다.

둘째, 차별성이 없다. 본 제도 하에서 PQ와 기술평가점수가 유사할 경우 15개의 복수예비가격에서 4개를 뽑는 경우의 수를 맞추어야 낙찰자로 선정될 수 있다.

즉, 확률이 1,365분의 1인 運札制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해결책은 있다. PQ점수가 동일하다고 해도 기술평가점수를 차별화한다면 능력 있는 업체를 선정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점수를 유사하게 유도하는 것이 조달청의 정책이다. 따라서 1-3등까지의 낙찰확률은 거의 유사하게 되고, 가격을 잘 예측한 업체에 수주의 감격(?)이 돌아가게 되는 運札制는 계속되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심사위원들을 섭외해야하는 발주청의 비용은 물론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기술제안서 작성을 위해서 업체들은 1,000-2,000만원의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비용은 많이 들고 능력 있는 업체를 선정할 수 없는 제도라면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셋째,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는 낮은 가격을 써야하는 모순이다. 본 제도에 의하면 PQ와 기술점수가 높은 업체는 당첨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낮은 금액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로 돼 있다.

용역입찰제도가 가진 모순 중의 모순이며 프로젝트 경험이 적은 발주자의 경우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이다.

또한 기술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한 업체와 예정가격 내에서 협상을 통해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국제기구 및 선진국과는 실로 대비되는 제도인 것이다.

한국경제는 IMF 구제금융 사태와 미국發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시공사를 중심으로 한 해외건설 또한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하며 보다 더 큰 시장창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용역업은 인력, 규모, 기술경쟁력, 해외시장 점유율 등 모든 부문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이 용역업체의 경쟁력 향상을 저해하는 후진적인 공공발주제도 때문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