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의 여유] 50대 연구원의 일기
[차한잔의 여유] 50대 연구원의 일기
  • 국토일보
  • 승인 2011.02.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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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홍 현대건설 부장


연구원들이 다 퇴근한 저녁, 연구소 뒷산을 한바퀴 돌았다. 한시간 정도 나무 냄새를 만끽하고 돌아와 ‘70․80 추억의 음악’을 틀고, 옛 기억에 잠긴다.

 

‘Hotel California’, ‘One Summer Night’ 등의 음악들을 듣다 보니 안 피우던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런 날은 나와 가족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중학교 때 혼자 미국으로 떠나 고맙게도 잘 자라 준 큰 딸과 아직도 스킨십이 많이 필요한 대학 1년 아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과연 나는 몇 년 더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까? 5년, 3년, 아니면 사업이나 할까?

과장부터 시작한 늦은 회사생활, 그동안 나와 우리 가족에게 많은 사랑과 자긍심을 심어준 든든한 현대건설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15년이 됐다.

그리고 연구소 고참이 돼버린 지금,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리더는 아니지만 현명하고 따뜻한 마음의 리더가 되고 싶다고 다짐한다.

이제 ‘Swing Town’이라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대학 1학년 시절 덕수궁 돌담길 돌아 성공회 성당 근처의 음악다방에서 이 음악을 처음 듣고 이해도 안되는 영어가사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져 감탄을 했다.

기타 소리가 가슴이 막 뜨거워지고 죽을 것 같았다. 그 때 누굴 사랑했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나의 젊음이 너무 아파서 다시는 이런 감상에 젖기 싫다고 일기에 적었다.

그리고 여름여행으로 떠난 속초 바닷가에서 새벽 바다를 보며 소리쳤었다. 이런 마음은 그만 멈춰 달라고.
30년 전 젊음의 아우성처럼 이제 멋진 인생으로의 마무리를 위해 불같이 일어나 묻고 싶다, 하늘에게.

최근 KOICA(한국국제협력단)를 통해 캄보디아의 공무원들에게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영어에 능통했고 전공지식의 수준도 놀라웠다. 나의 강연과 현대건설의 기술력은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그들이 가진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찬란하고 광대했던 역사 또한 빛나는 유산이 아닐까?
몇 달 전 만났던 가나공화국 공무원들과 연구소를 방문했던 베트남 대학원생들의 반짝이는 눈망울 또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60년 전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 수많은 개발도상국의 고위급 건설공무원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란다.

뭔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현대건설만의 노하우 전수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지난 몇 년간 적어도 20개국의 개발도상국 공무원들과의 만남에서 내 인생의 작은 목표가 생겼다. 아니 작은 소망이 생겼다.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던 그들과 함께하는 일이다. 언젠가 퇴직을 하게되면 KOICA의 해외협력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현대건설에서 배운 사랑과 기술을 그들의 젊은이들에게 남겨주고 싶다. 작은 선교를 같이 할 수 있다면 집사람도 동의하지 않을까?

현대건설이 ‘Global One Pioneer’의 꿈을 이루는 순간, 더 많은 현대건설의 성공신화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