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부산화재 왜 커졌나
[이슈분석] 부산화재 왜 커졌나
  • 최원영 기자
  • 승인 2010.10.1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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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외벽 불연재 사용의무화 시급

 

 

해외에선 의무적용·국내 기준 全無… 안전 ‘사각지대’

 

부산 화재 가연성 외벽자재 사용이 禍 키운 사례

국내 내화자재 기술력은 선진국… 제도는 후진국

최근 부산의 초고층 오피스텔서 발생한 화재를 계기로 내화건축자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건물 외벽에 미관을 위해 사용된 알루미늄패널, 그 심재인 가연성 폴리에틸렌이 화재가 커진 원인으로 나타났다.

국내에는 건물 외장재로 반드시 불연재를 사용토록 하는 해외에 비해 아직까지도 법적 규제가 없다. 결국 저렴한 가연성 자재로 시공되는 경우가 전체의 80%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건물 외벽에 불연성 패널을 사용했다면 작은 사고로 끝났을지 모르는 이번 화재를 통해 내화자재의 중요성과 국내 내화건축자재 실태 및 그 대책을 알아봤다.

 

불 왜 커졌나 

부산 해운대구 우신골든스위트는 지하 4층~지상 38층 규모의 판매·주거복합 시설을 갖춘 오피스텔로 지난 2006년 준공됐다.

외장재로는 일반적인 PE(폴리에틸렌) 심재를 사용한 알루미늄복합패널이 사용됐고, 건축물의 구조상 법적인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지난 1일 오전 11시 34분 저층부인 4층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발화 30여분만에 최상층인 38층까지 화재가 전이됐다.

외장재가 전소됐고 화재진화를 위한 모든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우신골든스위트의 외벽에 사용된 알루미늄복합패널 때문이다.

PE가 심재로 사용된 가연성 알루미늄복합패널. 외피로부터 화염확산, 화염의 통로 역할, 고층부로의 화재전이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갖고 있는 제품이다.

화재가 발생하자 패널의 심재가 연소됐고, 주변 온도 상승으로 인한 기류가 상층부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모든 패널의 심재를 태웠다.

상황을 고층빌딩에서의 강한 상승기류가 부추겼고 굴뚝효과(Stack Effect)가 발생했다. 30여분 만에 급속하게 V자 형태로 38층까지 화재가 옮겨가는 상황을 초래했다.

불길은 4~38층 외벽 마감재를 연소시켰고 38층 동관 펜트하우스를 전소시켰다.

통신케이블, 가스배관, 상하수도시설 등 상당부분이 훼손 및 손실됐고 입주자들 중 이재민도 발생했다.

 

초고층빌딩 화재발생 시 문제점 

이번 부산 화재를 통해 초고층건물 화재진압의 허점이 드러났다.

해외 여러 선진국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일정한 높이의 고층건물에 대해서는 외벽자재에 있어 불연재를 사용토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법 규정이 없어 가연성 재료를 포함한 외벽자재를 사용, 이번 화재를 키운 원인이 됐다. 기존의 고층건물들도 이번 사고와 같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응방법이 전무하다.

또한 현재의 소방장비로는 살수차가 15층, 사다리차가 18층에 불과하다. 사고 이후 소방헬기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불연재 판단을 위한 발열성 시험 사진.

 

 

해외 초고층빌딩 안전관리 사례 

우신골든스위트가 화려한 황금색을 띨 수 있었던 것은 외벽 마감재로 가연성 알루미늄 패널이 사용됐고, 패널 바깥쪽에 특수 페인트를 칠해 색을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연재는 아니었다.

미국 외장재 전문회사인 센트리아사의 심천보 수석엔지니어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발화성이 높지만 값싼 알루미늄 패널을 고층건물 외부에 사용해 화재가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국내 건축업계에서도 패널에 사용된 특수 페인트가 불길을 옮기는 작용을 했다고 설명했다.

외관을 살리려다 화재 안전은 뒷전으로 밀어놓은 것이다.

이에 비해 부르즈 칼리파 등 외국 초고층 건물들은 마감재를 불연재로 사용한다.

또한 부르즈 칼리파에는 42·75·111·138층 등 4개 층에 피난안전구역을 마련하고 특수 방화재로 마감했다.

이 구역은 외부 공기만 받아들이도록 설계돼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2시간 이상 피신할 수 있다.

타이베이 101빌딩,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 미국 뉴욕의 대다수 빌딩들도 마감재에 불연재가 사용됐다.

 

내화건축자재 기술력 어디까지 왔나 

부산 화재를 계기로 내화판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부분 고층 건물에 사용되는 복합패널은 폴리에틸렌 수지에 양면으로 알루미늄판을 붙여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불에 강한 소재가 있지만 단가가 비싸 시공 현장에서 주저하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내화건축자재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한국내화건축자재협회 안형진 실장은 “현재 국내 건축자재에 대한 내화성능 향상을 위해 기업들의 연구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정부에서도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안전의식 수준 및 의무화된 규정 등이 없어 내화건축자재를 사용하는 비율이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친환경 단열재인 ‘글라스울’은 유리를 재활용해 만든 불연재로 장시간 고온에 노출되더라도 변형되지 않고 유독가스와 연기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높은 단열성능으로 외부와 내부의 온도차를 유지해 냉·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고, 아토피와 알레르기의 원인으로 알려진 곰팡이와 진드기가 번식하기 어려워 새집증후군을 예방할 수 있다. 제조에서 폐기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다.

이 ‘글라스울’은 건물의 내·외벽 및 지붕재료로 널리 쓰이고 있는 샌드위치 패널의 철판사이에 단열재로도 사용된다.

이외에도 규산칼슘계광석을 녹여 만든 미네랄울이 심재로 사용되며 다른 건축자재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단열성과 시공성이 우수하다.

현대건축물의 초고층 및 경량화 추세에 적합한 ‘석고보드’는 우수한 경제성과 탁월한 시공성으로 일반 건축물뿐만 아니라 초고층 빌딩까지 거의 모든 건축물에 사용되고 있다.

석고보드에는 약 20%의 결정수가 함유돼 있어 화재발생시 초기방화와 연소지연 역할을 하고, 무기질 성분으로 불에 타지 않고 유독가스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열전도율이 냉·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고, 석고와 종이의 복합재질로 같은 무게의 다른 자재들에 비해 소음을 차단하는 차음 성능이 뛰어나다.

포름알데히드, 휘발성유기화합물, 중금속 등으로부터 안전하며 새집증후군을 유발하지 않는다. 제품의 100% 재활용도 가능한 환경친화적 자재다.

 

전문가 인터뷰 

 

안형진 기획조정실장
“내화 샌드위치패널 건축기준 마련돼야”

 

한국내화건축자재협회 안형진 기획조정실장은 “국내 공장 및 창고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대형 화재사고가 불에 잘 타는 스티로폼과 우레탄을 심재로 사용한 샌드위치패널을 사용해 발생한 것으로 만약 불에 타지 않는 글라스울과 미네랄울 패널이 사용됐다면 대형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실장은 또 “하루빨리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강화된 샌드위치패널 건축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외장재 시장에서는 글라스울이나 미네랄울이 일반 스티로폼보다 약 30%정도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각광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자재 전문가들은 인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안전성을 더해주는 이같은 불연재가 많이 보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민석 사장
“효과·안정성 확보한 내화성능자재 적용해야”

 

건축자재 전문업체인 (주)비엠씨지코리아 강민석 사장은 “건물의 외벽을 불연재로 사용토록 해야 한다는 국회 및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적극 찬성하지만 불연재의 성능 규정을 어느 수준으로 하느냐도 간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즉 충분히 효과를 보고 안전성을 갖추려면 구체적 기준이 내화성능 2시간 이상 정도로는 규정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강 사장은 “외벽기준만을 세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여러 가지 가연성 물질에 대한 복합적인 규정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 샌드위치패널 시장규모는 스티로폼 73%, 글라스울 17%, 우레탄폼 10%로 글라스울 보급률이 저조한 상황으로 불연자재 확대 공급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 강 사장의 주장이다.

한편 현재 관련부처에서도 건축물 외부마감재료 및 구조에 대한 규정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미국 등 선진국의 외벽에 대한 화재확산방지 및 난연성능, 시험방법에 대한 기준을 비교하며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