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변수의 위기
혼란변수의 위기
  • 국토일보
  • 승인 2008.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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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 칼럼] 본보 편집인

 

 

20여일 남짓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나라꽃, 무궁화를 보게 될 것이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에선 양력 7월 중순쯤에 그 첫 꽃송이를 터뜨린다. 대체로 초복을 전후해서이다. 올해는 7월19일이 초복이다. 그러나 날로 심해지는 이상기온 현상을 생각하면 올해는 더 빨리 필 가능성이 짙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우리 국민은 너나없이 무궁화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것은 우선 나라꽃, 곧 국화(國花)라는 이미지가 상념을 호의적으로 이끌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다 ‘일편단심’ ‘영원’ ‘끈기‘를 상징하는 무궁화의 꽃말까지 부지불식간 우리의 자랑스러운 국민성으로 내세워지고 있는 이미지와 맞아떨어져 더욱 좋아하도록 연상 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것 같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숨박꼭질 놀이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어린이 놀이 문화로까지 자리 잡았겠는가. 이럴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속의 무궁화 사랑은 매우 강렬하고도 진솔하다.


 하기야 무궁화에는 애지중지해야할만한 요소가 적지 않다. 무궁화는 새벽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오므라들어 우리가 보는 무궁화 꽃이 매일 새 꽃처럼 보이게 하는 매력을 뽐낸다. 더구나 같은 나무가 한 해에 약 백일 동안 날마다 새로 피는 꽃을 세상에 공양하는 희생적 자세까지 과시한다. 정말 날마다 새 꽃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궁화는 나라꽃의 자리에 오르기에 손색이 없는 매력을 지닌다.


 그렇지만 무궁화의 이런 매력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는 결코 똑같지가 않아 안타깝다. 예컨대 중국 사람들은 무궁화 꽃의 이 성실성을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변덕스러움으로 여겨 비꼰다.


 하긴 백일을 계속되는 끈기를 보지 않고 하루 동안의 피고 짐만을 본다면 무궁화의 됨됨이를 변덕스럽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런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요즘의 우리 사회상으로 눈을 돌리면 아마 우리 민족도 이러할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짧게 보았을 때는 변덕스럽고 길게 보면 꾸준한 사람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절망스럽고 장기적으로는 희망에 넘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사실 냉정히 따져들면 한국인들의 정서가 짧은 시간을 두고 급변하는 것은 결코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말이 아닐 정도인 나라꼴을 보면 더욱 그렇다. 모든 것을 급하게 풀고 얻으려다보니 감당도 못한 채 오히려 나라만 혼란에 빠뜨린 꼴이다.


 일거에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금방 경제를 살릴 듯이 몰아친 이명박 정부의 조급증이 우선 그렇고, 갓 3개월을 넘긴 정부에 온통 불만을 쏟아내는 국민들의 성급함 역시 같은 맥락에서 득(得)보다 실(失)을 키우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이번 사태도 따지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자만과 국민의 불만이 너무 빨리 분출한 데서 빚어진 일종의 급하고 변덕스러운 국민성의 탓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의 정서가 짧은 시간을 두고 급변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나 이것을 고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런 모습은 비웃음과 놀림의 대상으로 희화화되고 때론 악용될 개연성이 짙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우리의 이번 사태는 세계적인 시선 속에 때론 경계의 대상으로까지 떠올랐다.


 어디 외국인들뿐이겠는가. 감정적으로 쉽게 달았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우리의 민족성은 이미 한국인들끼리 서로 악용하는 혼란변수로 작용하면서 국가적 화(禍)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요즘 나라 상황을 보면 온통 서로 쇼만 공연하기에 열중하는 모습일 정도다. 진실은 없고 행사와 사건만 판을 치는 꼴이다.


 이 바람에 나라엔 혼란만 증폭되는 새로운 위기 변수가 엄습했다. 경제 살리기가 화급한 문제가 아니라 혼란을 다스리는 문제가 오히려 중차대한 변수로 등극한 양상이다. 단언컨대 지금 한국호의 최대 위기 변수는 ‘혼란’이란 악재다. 지도자나 리더, 전문가는 없고 아마추어들이 더 행세하려는 혼란만은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다. 엄계(嚴戒)되어야 마땅하다.


 이제야 말로 우리 삶의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려는 자성이 절실하다. 우리가 나라꽃의 이름에 걸어 서원한 대로 그야말로 성(誠)과 실(實)로 나라를 무궁하게 이끌려는 결단이 그래서 긴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