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구조조정 발표
기묘한 구조조정 발표
  • 이경운 기자
  • 승인 2010.06.2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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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금융기관의 건설사 3차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되자 일단락 될 것 같았던 업계의 혼란이 최고조로 치솟았다. 구조조정의 대상기업 명단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5일 명동 은행회관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이종휘 우리은행장은 기자들의 “명단을 왜 비공개로 했는냐”는 질문에 “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과 대외 영업활동을 감안해 대상 업체명을 밝히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말은 구조조정 계획 발표 이후에도 해당 건설사들의 영업을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지만 뭘 모르는 소리다.

이미 건설업계는 루머가 극에 달해 說에 오른 건설사는 영업활동을 접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끝까지 비밀로 부칠 수 있는 양 발표하는 채권단의 모습은 흡사 이장폐천(以掌蔽天,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다)이다.

결국 구조조정계획 발표 이후 건설업계는 향후 일정에 대한 논의를 하지 못했다. 25일은 그저 오보와 루머가 난무한 하루였다.

특히 구조조정 대상 기업으로 알려진 5개 상장 건설사의 이날 주가는 널뛰기를 거듭했다. C등급 건설사가 하한가를 맞고 D등급 회사가 상한가를 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연출됐다.

이 상장사들은 금요일 장이 마감될 때까지 공시조차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은행 등 18개 채권은행들은 한 곳에서 계획을 발표했지만 그 통보 일정은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이 상장사들의 공시에는 증권당국의 풍문조회 요구만 가득했다.

이 회사들의 주식을 산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의 손실이 예상된다. 이들은 주말동안 온갖 자료를 뒤적거리며 밤잠을 설칠 판이다.

대한주택보증도 D등급 회사들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계약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전례와 같은 “주택보증에 가입돼 있어 분양계약자의 피해는 없다”는 자료를 내야 함에도 명단이 없어 알맹이 빠진 회의만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說에 오른 건설사의 분양계약자들은 답답한 주말을 보내게 됐다.

또한 제일건설(익산), 한라주택(대구) 등 說에 휩싸인 건설사 때문에 이름이 비슷한 한라건설과 제일건설(광주) 등은 부동산 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상황을 해명해야 했다.

하루 종일 루머와 싸운 한 건설사 관계자는 “구조조정 회사의 시공능력과 본점 소재지를 파악해야 했고 우리 회사와 연관성이 없다는 걸 설명해야 했다”며 “구조조정 발표로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지만 뒷맛이 참 쓰다”고 말했다.

채권은행 입장에서 부실기업을 평가해 그에 맞는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건설·금융의 모든 언론과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중대한 발표를 함에 있어서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C와 D등급을 받은 회사 직원들은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고, 이 회사에 투자한 사람들과 받을 돈이 있는 하도급 업체들은 주말동안 발을 동동거려야 한다.

기업의 생과 사를 발표함에 있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정부의 보다 신중한 자세 전환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