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의 측근관리
태종의 측근관리
  • 국토일보
  • 승인 2010.05.3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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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환의 세상만사] 前 (주)삼미 대표이사 / 공학박사 / APEC 공인컨설턴트 / 기계기술사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은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그러나 부정선거가 아닌 실질적인 국민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한 시기는 아마 박정희 대통령 이후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그 이후 선출되는 대통령, 국회의원 또는 자치단체장마다 측근을 중용하는 형태를 취해왔는데 이는 당선되기 전의 부정에서 당선 후 통치수단으로 장점보다는 단점도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의 이 명박 대통령도 회자되는 루머를 남기셨는데 ‘강 부자’, ‘고 소영’ 같은 것들이다.

대통령으로 국민을 위해 인재를 중용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일이긴 하나 당선공로 또는 당리당략에 따른 나눠 먹기식이라면 더 없이 곤란한 일일 것이다.

조선왕조의 3대 태종은 1400년 11월부터 1418년 8월까지 17년 10개월간 재위하면서 좋은 정치를 펼치기 위해 자기를 위해 몸 바친 충신과 친족을 제거한 대표적인 분이다.

태종 자신의 출신이 태조 이 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을 뿐 아니라 상왕이신 태조 이 성계가 이복동생 방석을 태자로 책봉하려는 과정을 다 평정했으니 그 피비린내는 예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태종이 임금으로 즉위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국권을 강화해 선정을 펴는 것이었다. 또한 안정된 왕권을 확보하는 일과 국가의 기강을 튼튼히 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 재위기간뿐 아니라 4대 세종대왕이 안정된 정치를 펴나가는데 필요한 초석을 쌓아준 것이었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몇 가지 주요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을 확립하기 위해 공신과 외척들을 조정에서 대부분 제거했다. 1404년에 개국공신이었던 이 거이와 이 저를 귀향시켰다.

1407년에는 불충을 들어 처남으로써 권세를 부리던 민 무구, 민 무질 형제를 사사했다. 그리고 1415년에는 나머지 처남 민 무흘과 민 무희 형제를 서인으로 폐하여 사사했다.

사실 이 들은 태종이 즉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측근 중에 최 측근이며 그들의 친누이 원경황후 민씨가 4남 4녀를 낳아 그 중의 한분이 성군 세종대왕이었으므로 어느 정도 세력을 갖고 있었을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같은 해 수족이었던 이 숙번을 축출하고, 1414년에 대부분의 공신들을 은퇴시켰다.

물론 그 시절의 정치상황과 오늘날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은 국리민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것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국민을 위해 일할 새로운 지역지도자들이 탄생될 테인데 국민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부정을 앞세워 당선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금품을 수수해 사법당국에 적발되는 것이 단지 매스컴에 보도되는 것 이상일 테고 대부분의 국민들도 이를 빙산의 일각이라고 믿고 있다.

이렇게 당선된 지도자들은 고위지도층인 대통령과 국회위원들의 최측근이 되어 선량한 민주정치를 망치게 만들 확률이 매우 높다.

바라건대 2010년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에 당선되는 지도자들은 태종의 마음을 단 10분의 1이라도 생각하는 올바른 정치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