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유연성이 없다
정책의 유연성이 없다
  • 국토일보
  • 승인 2008.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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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의 변화에는 득(得)과 실(失)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시기 선택의 적합성 여부에 따라 그 효과도 큰 편차를 드러낸다. 그래서 정책의 변화나 새로운 결정에는 득실에 대한 정밀한 계량과 타이밍의 점검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게 상례다. 정책의 변화나 새로운 정책의 추진 때 흔히 여론 수렴이란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이런 맥락에서 정책당국은 사회나 산업 전체로 볼 때 당장 필요하고 소망스런 것이라면 어느 한쪽(집단)에 손실을 분담시키는 고통스런 정책의 변화나 선택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특정집단의 손실을 키우면서 일부적인 이익이나 효과를 추구하는 경직성만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를 각인시킨다.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업종보다도 강렬했던 건설업계가 출범 100일이 지나도록 기대와는 달리 시장 규제적인 건설정책이나 규정들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터에 오히려 ‘최저가 낙찰제 대상공사 확대 방안’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 방안’ 등 대부분의 중소건설업체 및 하도급업체들에겐 치명적인 정책의 추진 방안만 제시되자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반발의 핵심은 우선 그 당위성을 떠나 이들 방안의 시행시기가 적절치 않고 실효성도 회의적이면서 부작용과 후유증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데 모아진다. 이미 본란에서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국고 절감 효과를 노린 최저가 낙찰제 확대의 경우만 해도 덤핑 경쟁에 의한 부작용과 국가적 경제 손실이 더 부각되는 양상이다.


 이를테면 덤핑 심화로 시공부실을 초래함은 물론 지방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한 중하위급 건설업체들의 경영 악화까지 초래하는 악순환의 손실이 크다는 여론인 셈이다.

 

구체적으로도 대상 공사가 현행 300억원 이상에서 100억원 이상으로 확대될 경우 이 규모의 공사를 타킷으로  하는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500~1,900위권 업체(약 1,500여개)의 직접적인 타격이 가시화될 수밖에 없고 이 범위의 업체들 대부분이 지방의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지금 국내 건설업체들은 최악의 주택경기 침체로 부도업체가 속출하는 빈사상태를 맞고 있는 형편이기에 우선 시기적으로 무리라는 지적이 따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정책이나 제도의 변화가 시기적인 딜레마로 악순환만 심화시킬 뿐 얻는 것 보다는 잃는 게 더 많을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시공참여자 제도의 폐지 방안 역시 그 명분에서는 나름대로의 당위성을 지닌다고 하더라도 시기적인 현실 적합성에는 공감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반발이며 우리 또한 이런 시각에 동조한다.


 이 제도를 폐지하려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시공참여자를 별도 사업주로 보고 해당 사업주가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 또는 건설기술자의 노임을 해당 사업주인 시공참여자가 횡령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이를 막고 일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해 주자 데 있다.


 이런 취지라면 어느 누구도 나무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피해를 구조적으로 보완하지 아니하고 단지 시공참여자 제도를 폐지함으로서 전문건설업체들에게 임금지급 책임을 떠 넘기는 단선적 해결 방식에 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건설산업의 구조적인 거래 관계를 좀도 심층적으로 분석하거나 좀 더 나은 방안으로 대책을 마련하려는 것이 아니라 손쉽게 업체의 책임 확대로 풀려는 안이함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이럴 경우 표면상으로는 전문건설사의 직영공사 성격을 띠게 되다보니 노임체불이나 부실시공 사태 등은 줄일 수 있겠으나 장비임대, 자재매입, 용역인부 및 기술인부 확보 등 대형 전문건설사가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문까지 떠 안아야 하는 실행 불가능한 부담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최저가 낙찰제 확대의 폐해처럼 이 제도 역시 졸속과 시기 선택의 패착으로 업체들의 경영난만 가중시킴으로써 오히려 기능 인력들을 거리로 내모는 꼴의 부작용만 양산할 우려를 짙게 할 뿐이다. 그렇기에 시기 선택의 탄력성 등 정책의 유연성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