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대란, 건설현장이 무너진다
유가 대란, 건설현장이 무너진다
  • 국토일보
  • 승인 2008.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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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투적인 정부의 ‘에너지 대책’이 민간은 물론 산업계의 원성만 키운 채 고유기 대란의 파장을 더욱 심화시키는 양상이다. 특히 건설현장에서는 경유가격 급등에 따른 자재운송비 앙등에 철근 값 등 자재비 폭등까지 겹치면서 공사 중단은 물론 공사 자체를 포기하는 파국적인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지난 28일 한승수 총리 주재로 열린 에너지 대책회의에서는 쿠폰제도인 이른바 ‘에너지 바우처’제도와 일부 보조금 지원 연장이라는 상투적인 처방을 내놓는 데 그쳐 원성을 빗발치게 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청와대에서 조차 미흡한 정부의 고유가 대책을 질책했겠는가. 이번 대책이 특히 비난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날 회의가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 열린 장관급 고유가 대책회의였음에도 유류세 인하 등 서민 가계는 물론 산업현장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처방은 아예 논의조차 않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현장에서 많이 쓰는 경유의 경우 휘발유 값과의 형평성을 고려한다는 명분아래 그 비율을 100(휘발유)대 85(경유)로 맞추겠다는 목표아래 지난해까지 세금을 계속 인상해 왔으면서도 막상 휘발유 값을 거의 따라잡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는 침묵만 하고 있기에 더욱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유가의 가장 확실한 대책으로 지적되고 있는 경유 유류세 인하 문제의 경우 오히려 “세수(稅收)만 줄어들고 효과가 없다”며 논의의 대상에 조차 올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현실을 보는 정부의 시각 자체를 의심케 할 정도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의 고(高)환율 정책이 국제유가 상승세를 환율로 흡수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내유가 급등을 부채질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는 터라 비난의 여론은 더욱 고조되는 기류다. “경유가격 폭등 등 고유가 상황에 상당 부분 책임 있는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실기(失機)만 하고 있다”는 에너지시민 연대의 성명도 이런 맥락의 하나며 유가 대란의 직격탄을 맞은 화물연대에선 “하나같이 대책이라고 할 수 없고,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 안일한 사고(思考)의 전형”이라는 성명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이렇듯 정부가 안일한 대응으로 실기(失機)하는 사이 빚어지는 산업현장의 파국적 사태가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화물연대의 6월초 대대적인 파업 예고에 이어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영종 신도시 부지조성 공사가 덤프트럭들의 운행 정지로 전면 중단 상태에 있는 가운데 특히 건설현장의 공사 중단 사태가 속출하는 심각한 양상이다.


 건설현장들이 초비상 사태에 빠진 것은 치솟는 경유 가격 탓에 자재운송비 압박이 심각한 데다 철근 값이 1년새 2배나 오르고 레미콘· 시멘트 가격마저 뛰는 등 2중고를 겪고 있으나 어느 것 하나 정부 차원의 지원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철근가격 상승만으로도 건설업계가 올해 추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3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되고 있을 정도다.


 그렇지 않아도 건설업계의 경우 분양시장 침체로 미분양 주택이 쌓여만 가는 고통 속에 부도업체가 속출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터라 자구노력의 한계를 벗어난 유류 및 자재 가격 앙등에 대한 대안 마련을 정부에 촉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막상 기대했던 정부의 에너지 대책마저 이처럼 형식적인 겉치레에 그치다보니 현장에서의 부정적 파장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우려될 수밖에 없다.


 다만 국토해양부가 특정 자재 가격 인상을 건축비 조정기간(매 6개월) 이전이라도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이르면 6월부터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해 다행스러우나 이 또한 집값 안정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이 정부의 포지션으로 보아 과연 실현될지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산업현장, 특히 건설 현장이라는 실물경제에 고유가와 각종 원자재 가격의 급등 그리고 인플레와 경기위축이라는 4중고의 악재가 덮치기는 전례가 드문 일이다. 정말 건설현장에 대한 표피적이고 안일한 시각을 엄계(嚴戒)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