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건축 통한 미래도시 구축 방안
[특별 기고] 건축 통한 미래도시 구축 방안
  • 국토일보
  • 승인 2010.03.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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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상 대 고려대학교 교수 / 세계초고층학회 회장

“건축물은 국가 경쟁력확보.브랜드 제고 주요 도구다”

국가 미래 비전.스케일은 기본 해외 저명 건축가 작품 유치 많아야
불공정한 심사제도 개선… 좋은 작품 위한 설계.시공 시간 확보 필수


인류 역사의 발자취에서 건축물은 항상 우리에게 문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왔다. 고대문명의 신비감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류의 끝없는 도전과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물을 통해 그들의 경이로운 삶을 들여다 본다. 마찬가지로 서양인은 동양의 건축물을 통해 신비롭게 비쳐지는 삶을 느끼게 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건축물은 문화적 산물이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등 많은 분야가 녹아든 결과이겠지만, 일반적이고 보편적 측면에서 본다면, 1차적으로 어느 문명을 읽는 본보기는 눈앞에 펼쳐진 건축물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 만큼이나 우리는 건축물을 다룰 때 보다 많이 신중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몇 해 전 유럽에서 발간된 세계 100대 도시를 소개하는 책자를 본 적이 있었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도 호기심을 발동하게 하는 주제이다.

자연스럽게 혹은 당연스럽게 서울이란 도시를 찾아 책장을 넘겼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교토, 중국의 베이징, 태국의 방콕 등 익숙한 도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도 동방의 주요 도시이자, 세계 10위권에 육박하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도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지난 2월 초에는 인도 뭄바이에서 세계초고층학회 학술대회가 있었다. 세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이 대회의 주제? 발표 내용에는 어김없이 영국의 런던, 호주의 시드니, 중국의 상하이 등 세계 여러 도시가 거론되었지만, 여기에서도 여전히 서울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오랜 세월 외세의 영향에서도 굴하지 않고 찬란한 문명을 이루어온 한민족의 흔적을 세계인들의 인식 속에 심어주고, 국제도시 서울이 세계도시의 하나로 거론되기 위해 우리는 이 시점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일은, 많은 세계인들이 빠른 성장의 긍정적 표본으로 서울을 지목한다는 것이다.

동남아 및 중동지역에서 서울을 랜드마크하기도 한다. 이를 증명하듯, 얼마 전에는 미국의 어느 유력 신문이 서울을 가장 방문해 보고 싶은 도시 31개 중에서 3번째로 꼽기도 했다.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아주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건축전문가의 한사람으로서, 과연 이런 평가에 동의할 정도로 서울이 바뀌었는가? 라는 논제를 던져본다.

물론 일본 강점기와 6.26 전후를 통해 폐허와 같은 도시를 지금의 국제도시로 변모시킨 국민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세계도시를 거론할 때 아시아지역의 중국, 일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도시의 미래를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소위 우리가 이야기하는 도시의 구성은 무엇인가? 물론 도시는 인문학적 접근에서 복잡한 사회.문화 구조의 산물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도시의 구성은 건축물의 집합체이다.

또한 그 건축물 중에서 상징적 건축물은 도시를 상징하고 나아가 국가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중요한 객체이다.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파리의 에펠탑, 스페인의 사그라 다 파밀리아,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상하이의 진마오 타워,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 등은 도시의 지역적 색체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도시를 인식하는 기억체계로 구축되었다.

두바이에는 세계 최고층의 건물이 완공되어 세계인의 인식체계 속에 자리 잡았고, 싱가포르에는 마리나베이샌즈라는 창의성 넘치는 새로운 호텔이 도시의 상징물로 등장할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도시에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건축물이 왜 없을까?
조명이 약해서, 높이가 낮아서, 아니면 간판이 지저분해서인가? 이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를 형성하는 건축물 형성과정의 근본적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베이징에 2008년 등장한 CCTV 사옥과 새둥지 올림픽 주경기장, 국가대극원(오페라하우스, 음악당)을 보자. 우선 중국적이고 동양적 향기는 작지만, 규모 면에서 중국인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중국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했다고 하지만 이보다는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의 스케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정부 발주 공공건물을 통해 역사도시로만 치부되어 오던 베이징은 어느새 새롭고 강력한 현대 문화도시로서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많은 공헌을 한 부분이 올림픽이라는 세계인의 축제마당에 놓여있는 매력적이고 신비한 건축물이라 생각한다.

건축잡지는 물론 일반잡지에 당시 화두로 떠오른 위와 같은 작품들이 베이징이란 도시의 이미지를 현대적이고 부강한 이미지로 전환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건축물은 도시의 이미지를 탈바꿈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하나이다.

반면에 한국의 서울역 KTX 역사를 비교해 보자. 한국의 기술력이 부가된 고속철도는 세계에 몇 개 되지 않는 자랑스러운 철도가 아닌가? 그야말로 한 나라를 일일 생활권역으로 만들어낸 놀라운 장소성이 존재하는 건축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경제대국의 위상을 십분 발휘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기존의 서울역사와의 관계성도, 그렇다고 강력한 건축적 이미지도 찾아보기 힘들다. 마치 비가 새지 않는 정도의 모습이 아닌지 우려된다.

만약에 스페인의 구겐하임미술관과 같이 서울관광의 필수 코스로 KTX 역사가 같은 자리에 있었다면, 지금의 서울역과는 판이하기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또한 도시의 이미지로서 많은 이들이 서울을 기억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 일조한 것은 건축 관련 제도이다. 현행 설계심사제도는 어떠한가? 학연과 로비를 중심으로 하는 인적관계의 뿌리가 너무 두텁다. 아마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도 우리 풍토 상황이었다면 선정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학연에 의한 심사, 전관예우를 위한 심사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참신한 작가의 좋은 작품은 등장하기 어렵다.

우리 건축을 멍들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최저가 낙찰제이다. 이론적으로는 아주 이상적이고 경제적 제도인 듯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수주 경쟁은 실력(기술)보다 가격(덤핑)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덤핑으로 수주한 공사에서 이익을 남겨야 하니, 부품업체를 쥐어짜는 도요타자동차와 같이 멍이 커져만 갈 것이다.

값싸게 지으려는 제도가 공사품질의 저하, 건축문화 발전의 장애,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

앞서 여러 담론적 이야기들을 다루었다. 정리하자면, 건축물은 도시형성의 주요 요소이며 이는 국가 경쟁력확보와 국가 브랜드를 향상시키기 위한 중요한 도구로서 학문적 접근 뿐만 아니라 실질적 국가정책 수립 및 집행과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아야 한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비전과 스케일이 있어야 하고, 설계비가 비싸다고 해외 저명 건축가의 작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공정을 가장한 불공정한 심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건축가에게는 좋은 작품을 구상할 시간도 주지 않고 시공사에게는 좋은 품질의 공사를 보장할 이익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실적 위주의 출혈경쟁을 시켜서는 안 된다. 소위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이라는 나라는 이 정도 문제로 신음하지 않는다. 국가경영의 기본적인 문제일 뿐이다.